Monday, March 11, 2013

03MAR2013






  눈을 뜨고 일어난 아침이 쓸쓸하다. 오늘 같은 날 아침 밥을 차려줘야 진짜배기 성실한 아내련만 장시간 버스에 앉아 공으로 얻은 여독이란 쉽사리 풀리지 않는 것인 모양이다. 남편은 이미 출근 하고 없고, 주말동안 부대끼던 식구들도 각자의 이유로 아침 일찍 집을 나섰겠지. 혼자 있다 함께 있게 되는 것은 조류가 큰 바다로 흘러 들어가 듯 자연스런 일이다. 그러나 함께 있다 혼자가 되는 것은 내 곁을 썰물처럼 빠져나간 그이들 대신 밀물처럼 밀려드는 공허함을 온 몸으로 받아 내는 일이다. 친정집에 내려 갈 때면 열심히 말하고 열심히 웃는 내가 지금 누구와도 나눌 말 없이 덩그라니 소파에 들어가있다. 매일, 혼자서, 여유로이 보내던 그 아침 시간이 오늘은 조금 다르다. 나를 배웅하고 종종 극장으로 발길을 돌리던 부모님 마음을 알 것 같다.
 지난 금요일, 동생이 군에서 백일 휴가를 나왔다. '집에 네 식구 모이는 게 오랜만이군' 했다가 '이제 우리 넷이 함께 살던 집에 모이는 일이 날마다의 당연한 일이 될 수 없구나' 하고 깨달으면 아직 젊은 내게도 시간은 가차없이 빠르다. 친정 문지방을 밟으며 그 생각을 했을 때가 벌써 자정이 가까워 오는 시각이었다. 강원도에서, 경상도에서, 전라도에서 모여 '우리의 집'으로 향하는 길, 처음 가져보는 엄마의 새 차는 뽐내듯 빛났고, 일주일 간 서류와 씨름한 아빠의 눈은 시큰거렸으며, 사복으로-들은 군대 용어로 하자면-환복하며 동생이 벗어제낀 군복에서는 낯선 냄새가 폴폴 풍겼다. 그리고 나는 아줌마가 되어있다. 
 가만 생각해보니 아빠는 주말동안 눈이 아프단 말을 두 번이나 했다. '아빠'라는 사람도 아플 수 있을까? 나이듦이란 완전한 정신적 성숙을 의미하기 보다는 도로 아기가 되는 것과 같음을 보여주는,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영화처럼 아빠의 아이같은 어리광을 번번히 무심하게 받은 것 같아 마음이 쓰인다.
 늦은 시각이나마 '우리 집'에 도착한 우리는 맥주를 한 잔씩 마셨다. 아빠에게 맥주란 기분 좋은 순간 터트리는 축포와도 같다. 집에 들어가기 전 저녁을 먹은 식당에서, 집에 도착해서, 그리고 그 이튿날 아침 겸 점심상에서도 모두 맥주 한 잔씩 했던 걸 떠올리면 눈이 아픈 아빠는 주말동안 꽤 행복했지 싶다.
 나쁜 시간은 길게 느껴지지만 좋은 시간은 언제나 짧고, 나쁜 시간의 대사는 또렷하지만 좋은 시간은 결국 인물과 사건과 배경도 흐릿하여 고작 그 때의 좋은 느낌뿐이란 진실은 문득 잔인하다.
 어떻게 벌써 일요일이 되었을까. 휴가 나온 군인보다 먼저 복귀하는 누나를 배웅하기 위해 터미널까지 따라 나온 동생은 대합실에 다른 군인을 보더니 불쌍하다 말한다. 기상 나팔 소리를 하루라도 덜 듣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모른다나. 부산에 도착하니 저녁 시간을 넘기고 말았다. 하루 그리고 이틀이 시한부의 시간처럼 느껴지는 동생은 밖에 해 지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는 것조차 무척이나 괴로울테다. 그러나 군에서 보낸 100일이 그리고 밖에서 보낸 4박 5일이 이렇게 흘러가는 걸 보면 그의 21개월도 곧 채워질 것이다. 나의 공허한 시간도 곧 메워질 것이며 엄마의 새 차도 이내 엄마의 냄새로만 가득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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