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 동생이 군에서 백일 휴가를 나왔다. '집에 네 식구 모이는 게 오랜만이군' 했다가 '이제 우리 넷이 함께 살던 집에 모이는 일이 날마다의 당연한 일이 될 수 없구나' 하고 깨달으면 아직 젊은 내게도 시간은 가차없이 빠르다. 친정 문지방을 밟으며 그 생각을 했을 때가 벌써 자정이 가까워 오는 시각이었다. 강원도에서, 경상도에서, 전라도에서 모여 '우리의 집'으로 향하는 길, 처음 가져보는 엄마의 새 차는 뽐내듯 빛났고, 일주일 간 서류와 씨름한 아빠의 눈은 시큰거렸으며, 사복으로-들은 군대 용어로 하자면-환복하며 동생이 벗어제낀 군복에서는 낯선 냄새가 폴폴 풍겼다. 그리고 나는 아줌마가 되어있다.
가만 생각해보니 아빠는 주말동안 눈이 아프단 말을 두 번이나 했다. '아빠'라는 사람도 아플 수 있을까? 나이듦이란 완전한 정신적 성숙을 의미하기 보다는 도로 아기가 되는 것과 같음을 보여주는,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영화처럼 아빠의 아이같은 어리광을 번번히 무심하게 받은 것 같아 마음이 쓰인다.
늦은 시각이나마 '우리 집'에 도착한 우리는 맥주를 한 잔씩 마셨다. 아빠에게 맥주란 기분 좋은 순간 터트리는 축포와도 같다. 집에 들어가기 전 저녁을 먹은 식당에서, 집에 도착해서, 그리고 그 이튿날 아침 겸 점심상에서도 모두 맥주 한 잔씩 했던 걸 떠올리면 눈이 아픈 아빠는 주말동안 꽤 행복했지 싶다.
나쁜 시간은 길게 느껴지지만 좋은 시간은 언제나 짧고, 나쁜 시간의 대사는 또렷하지만 좋은 시간은 결국 인물과 사건과 배경도 흐릿하여 고작 그 때의 좋은 느낌뿐이란 진실은 문득 잔인하다.
어떻게 벌써 일요일이 되었을까. 휴가 나온 군인보다 먼저 복귀하는 누나를 배웅하기 위해 터미널까지 따라 나온 동생은 대합실에 다른 군인을 보더니 불쌍하다 말한다. 기상 나팔 소리를 하루라도 덜 듣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모른다나. 부산에 도착하니 저녁 시간을 넘기고 말았다. 하루 그리고 이틀이 시한부의 시간처럼 느껴지는 동생은 밖에 해 지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는 것조차 무척이나 괴로울테다. 그러나 군에서 보낸 100일이 그리고 밖에서 보낸 4박 5일이 이렇게 흘러가는 걸 보면 그의 21개월도 곧 채워질 것이다. 나의 공허한 시간도 곧 메워질 것이며 엄마의 새 차도 이내 엄마의 냄새로만 가득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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