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단보도를 건너는데 바이올린을 맨 학생이 나를 앞서간다. 나도 저 만할 때 바이올린 매고 다닌 적이 있었지.
바이올린을 매고 의원 앞을 지나는 나를 보고 오 원장님은 "이양, 테니스 치러 가는가?" 하셨다. 악기 보다는 운동에 더 잘 어울리는 나의 덩치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오 원장님의 노안 때문이었을까. 어찌되었건 난 바이올린을 곧 그만 두었다. 오 원장님의 의원은 시골서 제일 번화한 사거리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었다. 엄마 가게가 어딨는지 설명 할 때는 의원 옆이라 하면 모두 고개를 끄덕 했다. 의원에는 의약분업을 하기 전까지 간호사들이 직접 약을 지어 내주던 작은 창구도 있었고, 화풍을 음악에 비하자면 단조의 느낌을 가진, 커어다란 뜨개질 하는 여자 그림도 있었다. 주사실 베드 머리 맡에 있던 그 그림은, 이상하게도, 꽉 잡은 엄마의 손과 함께 살을 뚫고 들어오는 주사 바늘의 공포를 덜어내 주었다.
신문을 읽으면 골목 상권에 관한 기사가 자주 눈에 띈다. 이미 대기업 따님이 빵집을 내기 전서부터, 뜨끈한 아스팔트로 신작로가 깔리기 시작한 이후론 시골은 모든 도로가 골목상권화 되고 말았다. 사람들은 금방 차를 타고 나가면 도시에 가 닿았다.
오 원장님은 손님이 줄었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노환 때문이었을까 병원에 나오시길 관두셨다. 엄마는 결국 신발 가게를 닫았다.